로마서

240504-큐티-로마서 1:1~17

제목: 십자가를 마주하려면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하다.

깨달음

(롬1: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복음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롬1:17, 우리말성경)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십자가에 계시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인하여 살것이다 라고 기록되어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것이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한다. 기록되기를

의인은 믿음으로 살것이다 라고 한것과 같다.

어떤 신령한 은사는 우리를 견고하게 한다.

열매가 맺히는것은 믿음을 말한다.

복음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 나타나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것이다 라고 한것과 같은 말이다.

십자가를 마주하는 사건은 어떻게 이루어 수 있는가..

십자가를 마주한 사람은 분명히 견고하게 된다.

십자가의 사건이 진정 나의 사건이된 사람은

믿음의 열매가 맺힌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고 한다.

이 의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얻는다고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의를 얻는 사람이

십자가를 진정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일까..

그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만약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고

십자가를 마주하게 되면..

의인이 되는 것이다.

의인이 되면 내 힘이 아닌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그 의로 살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믿음으로 얻어지는 그 과정

다른 차원의 움직임이....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2000년전 예수님의 그 승리라는 힘을

진짜 나의 승리가 되도록

정신이 뒤집어져 정신이 다시 계조되도록

다른 정신 새로운 정신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말그대로 예수님의 정신이 나의 정신이 되게 한다는 뜻일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십자가를

계속 마주하도록 힘써야 하는 것인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의라는 것을

믿음으로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말 십자가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럼 정말..나의 정신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얻은 그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힘으로

예수님의 그 승리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삶 현실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믿음으로 얻는다면 믿음은 어떤 방법으로 생기나..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생긴다.

말씀을 듣고..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믿음이 삼십배 육십배 백배 열매를 맺는다.

믿음은 자라나는것인가..

믿음이 생기려면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는걸까..

장로님 한분이 이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말도 떠오르고..

정말 평생이 걸리는 일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생긴다.

무엇을 듣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것인가..

말씀..

말씀은 무엇인가.. 인생 작품에 대한 의미

하나님 저자의 의도 생각이 담긴 책 성경이다.

인생 작품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가 요소는 무엇인가

인생 작품을 살아내며 배우며 성장하며 자라나며

무엇을 느끼나..

인생사 생사화복 희노애락의 모든 요소들을 느낀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순간 가운데

인생의 저자 주인이 누구신지 알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지 알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말씀에서 소개하는 우리 인생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건..

인생안에 모든 것이 녹아있는것이다.

하나님을 만난다는게 무엇일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영이 임재한다는게 무엇일까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신분 아닌가..

그럼 하나님과 함께 있는 나의 그 모습은

시간 밖에 계시는 하나님의 차원이 되는게 아닐까..

그러니까 하나님과 진정으로 함께 하게되면

삶의 시간의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냥 지금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멈추어져 있지만

나아가는 영원의 시간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오직 지금 순간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순간순간에 머무르게 되니..

모든 순간이 밀도 있게 느껴지게 되는것이다.

모든 순간에 밀도가 있으니

그저..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이 세상 공간안에서 영원의 시간을 비유하자면

이런것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시간을 벗어나는 경험을 하는가

무엇인가에 몰입될 때라고 표현하고 싶다.

몰입되는 그 순간은 시간이 빨리간다.

아니 시간이란 개념을 잊게 되는 기분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 동행하고 임재되는

그 순간과 기분은 어떻겠는가..

비유하기도 어려운 정말 밀도있고 몰입되고 감사하고

하나님이 이미 완성하신 인생에 가까운

완성도가 높은 순간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義, righteousness, justitia

정의, 정직, 공정, 정당성

윤리·도덕상의 올바른 행실이나 착함. 공정하고 참되며, 경건하고 정직함. 죄와 관계 없는 상태(출9:27; 욥22:3; 잠11:5; 13:6).

성경에서 가르치는 '의'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이다. 즉, '의'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며(대하12:6; 시4:1; 사45:24),

하나님은 그 의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또 구원 역사를 이뤄가신다(사61:11; 습3:5; 롬1:17; 8:33).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의를 요구하신다. 본질상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요구에 반응하지 못하고 의를 이루지 못한다(롬3:19-20).

그래서 하나님은 한 의로운 방법으로써 절망 중에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셨다. 그것이 곧 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일이다(롬5:21; 딛3:5).

인간은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제물이 되어 마침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 이를 '칭의'(稱義)라고 한다.

즉, 실상은 의롭지 못하지만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실제로 흠이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가 아니라 비록 흠은 있지만 흠이 없는 것으로 인정(선언)받은 상태를 말한다(롬3:28; 갈2:17; 약2:25).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서 '율법의 행위'와는 대조된다.

따라서 의롭게 되는 길은 인간에게 원인이나 조건이 있지 않고, 오직 십자가 구속의 은혜에 대한 영혼의 응답, 즉 '믿음'에서만 가능하다(롬3:28).

물론 믿음이 의롭게 되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공로로 여겨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믿음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졌음을 확인하는 도구적인 측면에서는 조건일 뿐이다.

의롭게 됨 곧 칭의의 최종적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는 궁극적으로 예수를 통해, 예수 안에서만 완성된다.

한편, '의'를 뜻하는 원어를 보면

① '체데크' : '체다카'(똑바르다, 의롭다, 진실하다)에서 파생. 올바르고 공정하며 참되고, 경건하며 정직하다는 뜻. 죄와 관계 없는 상태(시17:15; 23:3; 89:15).

② '야솨르' : 원뜻은 '곧다, 바르다.' 비유적으로 '마음에 들다, 눈에 합당하다.'윤리적 측면에서 '옳다, 좋게 여기다.' 즉, 하나님의 눈에 합당하고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실 만한 상태(신12:25).

③ '디카이오스' : 원뜻은 '올바른, 공의로운, 무죄한.' 정해진 법이나 기준에 어긋나거나 예외 없이 그대로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요5:30).

④ '디카이오오' : '디카이오스'에서 파생. 실제로 의롭지 못하고 흠은 있지만 '의롭다고 선언(인정)하다', '의로움을 보이다'는 뜻(롬3:28; 갈2:17; 약2:25). → [교리 및 신앙 용어] '의롭다함을 얻음'을 보라.

윤리 도덕상의 올바른 행실이나 착함, 혹은 공정하고 참되며, 경건하고 정직하다는 뜻으로서 죄와 관계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출 9:27; 욥 22:3; 잠 11:5; 13:6).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의’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즉 ‘의’란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며(대하 12:6; 시 4:1; 사 45:24; 렘 12:1) 하나님은 그 의로써 이 세상을 경영해 가시며, 또 당신의 백성의 구원 역사를 이뤄가신다(사 61:11; 습 3:5; 롬 1:17; 8:33).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의를 요구하신다. 하지만 본질상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요구에 반응하지 못하고 의를 이루지 못한다(롬 3:19-20).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한 의로운 방법으로써 절망 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셨다.

그것이 곧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대속제물로 내어주신 일이다(롬 5:21; 딛 3:5).

인간은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제물이 되어 마침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다.

이를 신학적으로 ‘칭의’라고 한다. 말하자면 실상은 의롭지 못하지만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즉, 실제로 흠이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가 아니라 비록 흠은 있지만 흠이 없는 것으로 인정(선언)받은 상태를 말한다(롬 3:28; 갈 2:17; 약 2:25).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서 ‘율법의 행위’와는 대조된다.

의롭게 되는 길은 어떤 경우에서든 인간에게 원인이나 조건이 있지 않다. 오직 십자가 구속의 은혜에 대한 영혼의 응답,

즉 ‘믿음’에서만 기인한다(롬 3:28). 물론 믿음이 의롭게 되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공로로 여겨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믿음은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인간에게 받아들여졌음을 확인하는 도구적인 측면에서는 조건일 뿐이다.

의롭게 됨 곧 칭의의 최종적인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성된다.

한편 ‘의롭다 함을 인정(선언)받음’, 곧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는 말 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는, 심판과 형벌에서의 사면 곧 용서이다. 즉, 의롭다 인정받은 자는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죄인은 비록 율법으로써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지만(롬 1-3장; 갈 3:1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율법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심으로써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실 수 있는 근거를 삼으셨고(롬 3:21-4:25; 갈 3:13-14),

따라서 더 이상 율법의 형벌이 믿는 자들에게 부과되지 않게 하셨다(롬 6:7). 그럼으로써 죄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고 하나님이 선언하신 것이다.

둘째, 은혜를 통한 회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선언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 안에 있는 존재로 인정받게 되며, 그 의를 근거로 하나님과 화목한 자리에 서게 된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히 10:1-22).

셋째,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하신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자들에게 전가되는 것으로 온전히 성취된다(롬 3:25-26; 고후 5:21).

넷째,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은 영광스러운 신분이 된 것이다(갈 4:5).

원어이해

(체데크) - ‘체다카’(똑바르다, 의롭다, 진실하다)에서 파생. 올바르고 공정하며 참되고, 경건하며 정직하다는 뜻으로 죄와 관계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시 17:15; 23:3; 89:15).

(야솨르) - 기본 의미는 ‘곧다’, ‘바르다.’ 비유적으로 ‘마음에 들다’, ‘눈에 합당하다.’ 윤리적 측면에서 ‘옳다’, ‘좋게 여기다.’ 즉, 하나님의 눈에 합당하고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실 만한 상태를 말한다(신 12:25).

(디카이오스) - 기본 의미는 ‘올바른’, ‘공의로운’, ‘무죄한.’ 정해진 법이나 기준에 어긋나거나 예외 없이 그대로 공평하게 적용되는 것을 뜻한다(요 5:30).

(디카이오오) - ‘디카이오스’에서 파생. 실제로 의롭지 못하고 흠은 있지만 ‘의롭다고 선언(인정)하다’(to declare righteous), ‘의로움을 보이다’(to show to be righteous)는 뜻(롬 3:28; 갈 2:17; 약 2:25).

믿음으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

의란 죄와 관계없는 상태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다.

우리는 그 수많은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정말 수많은 죄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그 수많은 죄를 해결할 수 없기에

죄와 관계없는 진실된 상태 거룩한 상태가 될 수 없다.

의롭게 될 수 없다.

그럼 십자가와 마주하려면..

그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면..

죄가 없는 상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게 죄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죄의 삯을 죽음으로 대신 해결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나의 죄의 삯을 다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없는 상태가 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얻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가..

(롬10:9-10, 우리말성경)

9 만일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 구원에 이릅니다.

(Ro 10:9-10, NIV)

9 If you declare with your mouth, "Jesus i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it is with your heart that you believe and are justified, and it is with your mouth that you profess your faith and are saved.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 야 한다.

그리고 고백해야 한다.

profess  주장하다 공언하다

주장하다: 자기의 의견이나 주의를 굳게 내세우다.

공언하다: 여러 사람 앞에 명백하게 공개하여 말하다.

고백해 주장해 공언해 전파해

구원에 ‘이르러’ 야한다.

마음으로 믿어지어지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있다.

입으로 고백하기까지 이르는 과정이 있다.

과정..시간이 필요하다.

십자가를 마주하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였다.

인생이란 작품을 살아내며

인생이란 작품의 저자 주인이 누구신지와 인정하는 과정과

더불어..

인생이란 작품을 살아내는 가운데

예수님은 누구신지 인류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깊이 깨닫는 과정

이 모두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기까지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 작품을 살아내며 배우며 성숙하며 성장하며 자라가며

인생이란 작품의 저자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것이다.

하나님의 영 임재 은혜가 차오르는 과정이 필요한것이다.

충격적이지만..

인생을 만드신 분이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인정되기까지..

2011년 사회에 나와 방황이 시작되고

2024년까지 13년이 걸렸고

2018년 큐티를 시작하여

2024년 5월 마가복음서까지 7년이 걸렸다.

마음으로 믿기까지까지 시간이 이렇게 오래걸리는데..

입으로 시인 고백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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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5-큐티-로마서 1:18~32

제목: 인생 (하나님의 ‘의’ 진리를 거스르는 상태)

깨달음

(롬1:18-32)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1:18, 쉬운성경)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서,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것과 불의를 치십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진리’라는 말은 헬라어 ‘알레데이아(ajlhvqeia)’를 번역한 말이며, 히브리어로는 ‘에메트(tma)’입니다.

에메트는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실체를 가리키는 말로서, 올바르고 정확하며 참되고 생래적인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1. 구약에서의 진리

  ‘진리’라는 말이 하나님께 대해 사용될 때(신 32:4; 대하 15:3), 이는 그의 본성 혹은 의지의 성질, 즉 일관성 및 불변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의지의 참 본성이므로 하나님의 계명은 임의적 요구가 아니라 그 안에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느 9:13; 호 4:1).

에메트(tma)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표현이므로 하나님의 계명과 동의어가 되고, 따라서 다시 그 계명에 대한 인간의 적절한 반응인 진실과 동의어가 됩니다.

진리는 성실과 신실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종교적, 도덕적 삶의 전 분야를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신약에서의 진리

  신약에서의 진리의 개념은 구약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 진리는 교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구원적 사실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의 ‘진리’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진리(ajlhvqeia)는 구약의 에메트(tma)와 같은 개념입니다.

진리는 그 결과로 어떤 일을 행하게 되는 입증된 명제가 아니라, 신자들이 실행하는 성스러운 추진력입니다.

  바울의 ‘진리’ “진리가 예수 안에 있다.”(엡 4:21)는 사도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실현된 것을 전제한 것으로,

여기서 ‘진리’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뜻보다는 복음을 가리킵니다(갈 2:5, 14; 골 1:5).

진리(Truth)

일반적으로는 참된 도리나 바른 이치를 말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에메트’(’emeth)를 진리로 번역하고 있는데 견고, 안정, 불변, 성실, 충성 됨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되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본성이나 뜻, 하나님의 변함 없으심과 영원하신 본질을 가리킨다(창 32:10; 삼하 2:6; 15:20; 시 25:5; 31:5; 57:10; 60:4).

이것은 유동적이고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의 환경을 뛰어넘는 불변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한다.

헬라어로는 ‘알레테이아’(aletheia)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교리의 근거를 삼아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참된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고 있다

(요 3:33; 7:28; 8:26, 31-32; 17:3; 요일 5:20).

진리란..

하나님의 속성, 거룩함, 경건함, 본성, 본질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복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 경건함

죄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하나님의 의 거룩함에서 벗어난 상태

죄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상태 모습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왜 불의로 진리를 막을까..

왜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거스를까..

거스르다: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나 흐름과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태도를 취하다.

남의 말이나 가르침, 명령 따위와 어긋나는 태도를 취하다.

불의한 행동으로 하나님의 ‘의’ 거룩함 말씀과는 반대로

어긋나는 태도를 취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알만한 것을

그들 속에 보이게 하셨다.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것들

곧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져 알려졌는데..

그러므로 핑계하지 못할것이라 말씀하신다.

불의함에 대해 반응하는 속에 있는

양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일까..

양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 속 어딘가에서

정신속 어딘가에서 반응한다..

양심도 심어 놓으신것일까..

양심: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우리는 양심이란것을 안다.

양심을 다른말로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는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배우지 않아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반응을 알면서도 거스르게 된다.

이 양심이란 반응은 누가 주셨는가..

우리는 왜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며

양심이란 반응을 느껴야 하는가..

결국 양심이란..

태어나고 생명 인생을 살아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명 인생은 누가 주셨는가.....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인생을

영화롭게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못하며

살아가게 된다.

오히려.. 인생가운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각이 인생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생기고

어두워지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스스로 지혜를 찾아보고..

지혜있다 하지만 해결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잘못된 진심의 열매들로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않을 가장 귀한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온갖 죄들로 망치며 살아가게 된다.

우상숭배, 마음의정욕, 동성애, 음욕,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 배약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셨다.

죄의 삯은 죽음과 사망이다.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거스르던 사람이

나였음을 돌아보게 된다.

불의한 행동들은 누가 알려준것인가..

무엇인가에 영향 받은것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사실상 누가 알려준적도 없고 배운적도 없다.

모든 사람은 원래 죄인이라는 것이

다시 묵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인생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야만

인생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만

죄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의‘ 거룩함 경건함 말씀 예수님 복음을

믿음으로만 죄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다.

인생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면

잘 살아내려면..

십자가를 마주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십자가를 마주한다는 것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얻어야만

한다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것을

마음으로 믿어 의의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 깨닫게 되었다.

결국..

인생이란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잘 살아내려면

믿음이 자라는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

가장 먼저 알아야 할것은..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의‘ 거룩함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함을 깨닫게 된다.

오늘 본문을 짧게 요약하자면

하나님을 벗어난 하나님의 저자 의도를 모르는

인생 작품의 상태를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생이란 것에

한 측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성경의 이야기들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것인가 하면

‘인생’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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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6-큐티-로마서 2:1~29

제목: 칭찬은 하나님에게서만이다.

깨달음

(롬2:1-29)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내가 죄인임을 알고

나는 정말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하겠다.

남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 이전에..

가장 먼저 나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혹시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오직 율법을 행라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솔직히 그렇다..

말씀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참 된 의미를

듣고 알게되면 뭐하나.. 삶이 변하지 않는데..

내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고 하면서도

나의 삶이 다르지 않다면..

내가 안다고 하는 그 무엇을 모르는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안다고 할 때

만약 정말 잘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삶으로 열매가 보이게 될것이라

생각이 든다.

난 아는 사람이야 안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열매가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씀과 인생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면

마주하는 자세에 대해

누구보다 나 스스로가 알고 있을것이다.

분명히 표면적이다라는 것으로는..

내가 인생의 의미를 알고 제대로 살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묵상이 된다.

인생의 의미를 알고 제대로 산다는건..

이면적 내면에 영이 변화되는 차원인 것이다.

근데 이 차원을 느끼는건..

누구보다 본인이 알고 인지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본인 스스로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다면

분명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안다고 하는 그 안다는것도 모르는 것일수도 있고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라는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경험하고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오직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만 아시리라 생각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건..

죄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것이다.

내가 마음에 의가 이르렀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내가 입으로 고백해 구원에 이르렀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알고 이르러 갈 때..

표면적인건 나타나기때문에 쉽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면적 영적인것은 어렵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마주하는건

하나님의 의를 얻는건

예수님을 믿는건

죄가 없는 상태가 되는건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라고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칭찬해주시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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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7-큐티-로마서 3:1~31

제목: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의 마음)

깨달음

(롬3:1-31)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3:25, 쉬운성경)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고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사람이란 존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여주셨던 샘플이다.

율법은 유대인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사람이 율법으로는 온전히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실력으로는..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율법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에게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생이 무엇이냐 살아보며 듣고 받아들이고 인정해갈 때

마음으로 믿는것과 입으로 고백하는것이 이르러갈 때

인생을 만드신분이 누구신지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온전한 형상으로 회복하며

완성도에 다다르도록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묵상하게 된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인생 작품이

자신과 같이 의로운 상태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속해있는 회사와

환경과 상황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는 사람이다. 육신이 있다.

지구 물질 세계에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살아야 하지 않는가..생존해야 하지 않는가..

살아내려면 의식주의 조건들이 필요하지 않는가..

지금 이 회사는 무엇이냐고 다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쩌면..단지 살아내기 위한 의미로서의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환경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어쩌면..

일이란.. 살아내기 위해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중 하나일뿐..

살아내야 하는 진짜 더 중요한 본질적인 이유를 아는것이

더 중요한 조건 임을 묵상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이란 작품 시간을 그저 살아내는 것에

미치는것이 아니라..

지금 환경 상황가운데..

하나님의 꿈과 더 깊이 연결하는것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것은 분명히 각 사람의 영적 육적 외적 내적

실력에 달린 문제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근데 지금 내가 가장 깊게 느껴지는건..

지금 이 회사는..

나를 살리시려고 생명을 지키시려고

보내신 곳이라 느껴진다.

그러니까.. 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이러나 저러나..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보내셨다.

그런데 소금이 되냐 아니냐는

나의 실력에 문제라는 것이다.

소금으로 살아갈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는것이다.

혹시 누군가..100을 가지고 있어서 부러운가..

근데 1이 없으면.. 결국 0이다.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부러울게 없는 것이다.

100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에서 본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본을 보이는 것이 소금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소금의 짠맛을 내려면..

1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0만 있어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이 없으면 잘못된 열매를 맺게 된다.

손이 빠르고 냉철하게 일을 잘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인격이 덜 되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일의 과정은 엉망이 된다.

부지런해서 많은 일들을 처리해낼 수 있다.

하지만 많은것도 도가 지나치면...

비정상적인것을 정상이라고 인지하고

스스로를 채근하며 일의 본질을 흐리게 될수도 있다.

묵묵히 조용히 일하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진행되는 가운데

대화나 관계의 발전이 있을수는 없는 것이다.

100이 진짜가 아니다.

1이 있어야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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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큐티-로마서 4:1~25

제목: 하나님을 향한 마음 중심

깨달음

(롬4:1-25)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4:11, 우리말성경)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때에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으로서 믿는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돼 그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말을 듣고 몸좀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13년동안 침묵하시고..

이후이 나타나셔서..

언약을 주시고 할례를 행하신다.

아브라함은 일한것이 없이 무할례시에 그 믿음이

의로 여김받게 된 것이다.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 일한것이 없는 때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다. 확증해주셨던 것이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씀을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묵상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로마서를 통해 믿음의 조상이라 칭찬해주신다.

그리고 의로 여김받은 그 칭찬이

의로 여김받을 우리를 위함이기도 하다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은 부족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살아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도..

백세나 되어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않았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줄을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내가 뭔가 잘해서 의로 여겨주시는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처럼 부족한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보시고...

의로 여겨주시는 것이다.

거룩하다 여겨주시는 것이다.

죄가 없는 상태라고 여겨주시는 것이다.

아람이 너가 예수님을 믿는구나라고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십자가를 마주하게 된다는건..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셨고..

그 마음을 인정해주셨다는 것이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

어떻게 하나님께 진정한 마음을 드릴 수 있을까..

마음이란 무엇일까..

아브라함의 13년의 세월

나도 2011 대학교 졸업이후 현재 2024까지..13년..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던 13년

아브라함은 그 세월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바랄 수 없는 중에 있었던 것일까..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도 13년 세월동안.. 참 이리저리 많이 굴렀다..

나도 아직도 한참 미성숙하긴 하지만..

2011과 2024는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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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큐티-로마서 5:1~21

제목: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인생 이야기의 핵심을 알고 살아가는것)

깨달음

(롬5:1-2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은 사망이 왕노릇 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세상은 이런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소망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길 잃어 방황하던 세상에서

믿음으로 서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

은혜에 들어감을 얻는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자..

할 수 있고 가능하다..

세상이 주는 죽음과 사망 가운데서 환난중에도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그 환난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의미를 영생의 의미를

더 짙게 상기시키고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이것이 성경이란 말씀이란 인생이란 작품 이야기의

배경이고 핵심이고 내용이다.

그런데 인생 이야기의 배경 가운데는 환난이란게 있는데

인생 이야기의 핵심을 아냐 알지 못하느냐의 문제가

진행된다.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우리는..

인생이란 이야기 가운데

마딱뜨리는 이 현실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성경 인생 아야기의 핵심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환난이어도 상황이 어떠하든 잔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문득 엄마의 인생이 생각난다.

엄마 연무동때 1995년쯤 나이는

38살 정도였다. 내가 10살때...

지금 2024년 68세를 살아가고 계신다.

수많은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까..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니..

정신없는 정신이 차분히 가라앉는것 같다.

오늘 느끼는 순간순간의 잔잔바리같은 스트레스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구나 느껴진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다 느껴지니..

삶을 더 잘 살아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까...

답답한건

꿈을 꾸고자 하는 마음과 마주한 현실이..

격차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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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0-큐티-로마서 6:1~23

제목: 인생이란 이야기의 결말은 알지만 과정은 모른다.

깨달음

(롬6:1-23)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세상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다.

우리 사람은 본래 죄인이고

세상 가운데서 죄의 종노릇 하며 결국 사망에 이른다는

이야기의 배경 가운데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의 삯을 대신 갚게 하셨고

이 예수님을 믿는자는..

말씀을 복음을 인생을 듣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자는..

이르러 가는 자는..

결국 의롭다고 죄가 없다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이다.

진짜.. 아직 깊이 깨달아지지도 않았고 어렵지만

분명히 이 세상이란 이야기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죄라는 것이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죄라는 것의 묶여 살아가게 된다.

죄의 종이 되어 사망에 이르는 배경을 살아가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죄와 사망으로 내몰아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될 수 있다.

의의 종이되어 거룩함에 이르러 가는

이야기의 진실을 알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거룩함에 이르러 가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죄와 생명이 대치되는 이야기를 살아가는 존재다.

죄 가운데 살아가던 존재고

생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존재다.

인생에는 과정과 결과가 있다.

그런데 인생이란 대본은 이미 결과과 완성 되어있다.

우리는 결과를 안다.

하지만 어떤 과정의 모습으로 진행될지는 모른다.

과정 안에는..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되는 사건과..

우리의 죄의 삯 죽음 사망을 대신 갚으신

예수님을 알게 되는 사건과..

우리가 죄인으로 살았던 종의 습관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의 이르고 구원에 이르러 갈 때

의의 종으로.. 그러니까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새생명 가운데 살아가기 위한 싸움의 사건이 있음을

알아야 할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이란 이야기

마주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나는 어디쯤까지 온걸까..

짐작하건데..

의의 종으로 새생명 가운데 살아가기 위한 싸움의 사건을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가고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인생이란 이야기의 마지막 영생이 느껴져 가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은 영생이다...

이제 일한지 두달이 넘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정말 하루만 보고 지나왔다.

오늘도 많이 부담됐지만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일을 하면 할수록..

도무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부담되는것 같다.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걱정하지말자.. 잔잔바리같은 스트레스들에 짓눌리지 말자.

마지막은 영생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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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1-큐티-로마서 7:1~25

제목: 곤고한 사람이로다 (인생 이야기의 과정)

깨달음

(롬7:1-25)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과 마음의 법의 싸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

우리는 왜 이 싸움의 과정이 있을까..

하나님을 모르고 살때는

죄를 지어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죄는 죽어있었다.

하지만 성경을 알아가면서 죄책감이 생겼고

죄가 살아나게 되었다.

율법 지켜야 할 계명은 우리의 죽어있는 죄를 발동시킨다.

죄인인데 죄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죄인임을 알게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율법으로는 거룩하게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의롭게 되도록 거룩하게 되도록 하신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선한 것이다.

율법을 통하여 죄인이라는 진실에 눈을 뜨고

예수님을 통하여 그 죄가 온전히 없어짐을 이루기 때문이다.

율법의 완성인 것이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이게 무슨 말일까.. 신비롭다..

나는 분명히 육신을 입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마음 영의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닌 것이다.

이게 무슨 환타지도 아니고..

두가지의 세계의 눈이 떠지는 것이다.

육신의 세계의 이야기를 살아갈때는

죄악된 본성으로 죄의 법에 복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 영의 세계 숨겨져 있던 진실의 이야기를

인지하게 되면.. (하나님 예수님 말씀 믿음 인생)

죄인임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의 법이 발동되어..

육신의 세계와 영의 세계가 얽히는 것이다.

얽힌다는것은 충돌한다는 의미인것 같기도 하다.

육신의 세계와 영의 세계가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두가지의 법이 있는 것이다.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은 마음의 법과 싸워

우리를 죄의 법으로 사로잡으려 한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의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니 마음의 법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마음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육신은 본래 죄악된 본성이 있고 선한 것이 없기때문에

육신의 세계가 지배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이게 다 무슨 말일까..

성경 말씀 인생이란 이야기가 전하는 진실은

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렵다..

바울의 고백처럼 정말 곤고한 인생이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 주실 수 있는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뿐인 것인가..

곤고한 (탈라이포로스)

비참한, 고민하는, 근심하는, 곤궁한

곤고하다: 형편이나 처지 따위가 딱하고 어렵다.

그런즉..

인생 이야기의 과정가운데서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바울도 인생가운데 혼란스러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포로상이 다시 떠오른다.

하나님은 분명히 온전한 형태로 인생 작품을 만드셨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 온전한 인생 작품을 덮어 굳혀버렸고..

마음의 법 세월의 조각칼로

덮이고 굳혀져 버린 죄를 깍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쉽지 않은 것이..

깍아내는것이 아프기때문에

죄의 법이 발동하여 깍아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대로 있게 만드는 것이다.

어렵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분명히 우리는 사람이다.

저기 사람이 걸어가지 않는가.

이게 다 무엇일까..

사람 인생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영화도 개봉하지 않는가..

우리는 분명히 개봉한 사실을 알지 않는가

하나님 스스로있는분의 큰 이야기는 분명히 개봉된것이고

지금도 진행중인것이다.

하나님의 큰 이야기 가운데 나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야기의 구성가운데 두신 것이다.

내가 적으면서도 정신나간듯한 소리같기도 하다.

그러니..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말도

맞는 것 같다.

개봉한 영화는 맞다고 알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야기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인생 이야기 과정 중 이런 시간도 있는가보다 해야겠다.

신앙 사춘기인가...

곤고한 사람이로다...

2011년.. 인생을 거부하고 싶었던 때부터

2024년.. 인생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기까지..

나의 인생 이야기의 시작은..

인생을 거부하고 싶었던 때부터임을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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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큐티-로마서 8:1~17

제목: 싸움의 의미 (내가 회복되고 세상도 회복되고)

깨달음

(롬8:1-17)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영을 따르는 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것이 아니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양자의 영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

성령은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것을 증언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법 마음의 법을 따르려 하려고 한다면

영을 따르려 한다면

나에게 예수님의 그 성령이 계시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신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인생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법을 통하여

살아감을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 여전히..

마음의법과 죄의법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런 반응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반응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아들 자녀 상속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런 싸움은 무엇이 되기 위해 하는것인가..

이 싸움을 통하여 내가 잘되기 위함인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잘된다는게 맞긴 한 것 같다.

중요한건..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때..

이런 싸움가운데서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고난을 말하는 것일까..

고난의 대해 내가 스스로 그 의미를 깊이 깨우칠 수 있어야

하겠다.

고난.. 힘들다..

세상 사회에 나오면서 고난이 시작됐고

육신적으로 겪는 고난 영적으로 겪는 고난..

여러가지 고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셨는가

결국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셨다.

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게 맞다.

그런데 죄로 더렵혀져 있는 상태로 인류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상태를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작품과는 다른 상태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기에 인류의 시간이란 창조물을

걷어내지 않으시고 시간이 흘러감을 그대로 유지하시면서

해결하시는 과정을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작품을 계획하시고 만드셨을 때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였을까...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만드신 이 작품은

죄라는 것 때문에 원래 궁극적 목적에서 벗어난것이다.

궁극적 목적은 온전한 세상과 사람들의 모습이였을것이다.

하나님은 세상도 회복할뿐더러..

시간의 자연스러운 흘러감속에 태어나는 사람이란 인생이란

작품들 중 그 가운데..택하시고 부르시고 보내셔서

부르심 받은 자도 죄인에서 의로운 자가 되도록

일하시면서..

이런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씀을 듣고 인생을 받아들임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하고 인정받은자로 이르러 가는 것과 함께..

이들을 통해 세상 또한 회복되기를

바라시고 계획하신것일까..

어렵다..

그냥 작품이 망가졌으면..

냅두거나 버리거나 새로 시작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은 어떻게든 회복해서 다시 온전한 상태로

만드시고 싶으신걸까...

하나님이 만드신 이 이야기는 도데체 무엇일까...

알쏭달쏭하다.. 신비롭다..

너무 멀리간 것 같은데..

우선 내가 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보기에 온전함이 없는 상태지만

언제쯤 온전한 모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기에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뿐인 것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하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내가 너무 막중한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그저..

장영근 아버지 이경애 어머니의 자녀로

이 자리에 있기만 해주면

부모님의 마음에 빛이 되어주는 존재일수도 있고

장은종 장성실의 동생으로

이 자리에 있기만 해주면

누나들의 마음에 빛이 되어주는 존재일수도 있고

이런 관점으로.. 작아보이지만..

실질적인 현실과 맞닿아 있는 관계와 상황 환경가운데서

그저.. 그 자리에 있기만 해주면

빛과 소금의 역할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자리에서 마음의법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만 해주면 내가 해야 할 본분을 다하는 것일까..

정말 이게 다인것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까.. 완전하시니까..

더 크게 역사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큰걸 원하시지 않는것도 맞고

하나님이 나에게 큰걸 원하시는 것도 맞는 것 같다.

인생이 뭘까...

그래도 조금 살아보니..

말씀을 보다보니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당연히 전부를 알기에는 너무도 부족하지만

인생이 무엇인지 사고하는 과정은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임을 느끼게 된다.

인생이 무엇인지 내가 사고하여 깨닫게 되는

이 과정 자체도 해방된다는 것의 일부일까..

그냥 오늘따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한 마음에 집중하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향한 마음을 조금은 인지하게 되니..

당신도 나도 아닌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되니

정신이 자유로운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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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3-큐티-로마서 8:18~39

제목: 넉넉히 이기느니라

깨달음

(롬8:18-39)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

마가복음 이후부터 로마서를 지나며

말씀이 결국 인생을 말하고 있음을 인지한후부터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던 것 같다.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혹시 인생이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결국 어떤 것이 되는 것인지 조금씩 알게 되면서부터의

이후의 시간들 가운데 느껴지는

잔잔한 평안을 말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끝을 알기에 현재가 고난이여도

소망이 있기에 구원을 얻는 현재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묵상이 된다.

현재의 고난..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우리가 느끼는 모든 고난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승패를 말하는것이 아닌

승패의 벽을 허물고 넘어서는

하나님의 차원으로 모든 고난을 해석하여

진정으로 이기는 것

쉽게 말해..

지금 느끼고 마딱뜨리는 현재의 고난들이..

별게 아님을 느끼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오늘은 어떻게 보내나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건가

걱정되는것들이 참 많다.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근데 나의 생각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오늘을 살라고 하신다. 앞으로도 살아보라고 하실것이다.

근데 잘은 모르겠다.

살아보라고 하시니 살아야 한다.

오늘도 넉넉히 이길것이고

앞으로도 넉넉히 이길것이다.

잔잔하고 담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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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큐티-로마서 9:1~33

제목: 부르심 받은 자

깨달음

(롬9:1-33)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장익수 이연학

장영근 이경애 장은종 장성실 장아람

대한민국 남자 여자 은사 성향 건강 등등..

우리가 정하지 않은 많은 조건들..

2000년전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 전파

많은 선교사님들을 통해 대한민국까지 오게 되었고

양평의 주읍리라는 마을에 한 전도사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우리 가족 모두 아버지를 따라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지금 나도 나름 39년 살아가며

구르고 구르다..

결국 이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존재를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어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인생이 무엇이라고 정의해주는 성경 말씀이 있어

참 너무도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이였다.

정말 사람이란 무엇이냐의 궁극적인 본질을

알려주기에 다행인 것 같다.

생사화복 희노애락 모든 것의 저자이시기에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람의 이 부족한 지각으로

해석하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 부르시고 택한신 백성

사실 솔직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라는

어떤 사인이나 느낌 확신에 대해서는

아직 나의 실력으로 안다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최근들어 인생이 무엇이냐라고 정의를 유추해나가며

성경 말씀을 비추어 알아가는 모습을 볼 때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해 나감을 볼 때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지만 부르셨다고 하시는 말씀을

조금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럼 하나님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달라고

나를 부르신게 맞는데...

도무지 마딱뜨린 이 현실과 말씀의 간극을

어떻게 매꾸며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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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큐티-로마서 10:1~21

제목: 구원

깨달음

(롬10:1-21)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시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란 작품 이야기의 핵심은

구원이라는 것을 묵상하게 된다.

바울은..

구원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부름받은 자들에게

전하는것과 더불어..

구원이란 것이 나머지 사람들 모든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부르시고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에서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것과 함께

그럼 구원받은자들을 이미 정하셨다면

이게 나머지 사람들은 뭐냐고

누가 하늘에 갈지 무저갱으로 갈지에 대해

잘못 판단하는 사람들을 생각들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 세상의 이야기 핵심

산의 봉우리 정점 클라이막스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말하는 것의 핵심은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 믿음의 말씀을 전파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복음의 순종하지는 않을것이다.

우리가 해야하는것은..

아름다운 좋은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는 것까지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이니 우리가 전하고

마음으로 믿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이 세상의 진실은..

결국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 한켠에..

도데체 인생이 무엇이냐 이게 다 무얼 말하는것이냐

왜 존재함을 느끼며 온갖것들을..

사는내내 겪어야 하느냐라는 생각이 있음과 동시에..

살아가다보니..

도무지 사람의 생각으로는 해석이 안되니

이 세상을 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게 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인생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인 것 같다.

나름 좋게 표현해서 그만이지

하나님께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지만

결국 죽고싶다는 소리인 것 같다....탭치고 싶다는 소리이다...

그럼 그냥 좀 살면 안될까..

안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인생 생명 생애 존재의 본질적 이유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백하는 그들로 구원을 받게함이라는

마음에 원하는바에 대해 묵상이 된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 하나님의 이야기 핵심을 알고

구원을 함께 이루어가는 사람..

나의 현재 위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어떤 선택들이 있어야

튼튼하고 올바른 인생 이야기가 쓰여져 갈 수 있을까..

분명히 내게 맡겨 주신 영역이 있을텐데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왜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를까..

아니면 모르는 상태로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가다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해 나가시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의 작품 인생이란 이야기의 핵심

’구원‘

나의 현재 처해있는 마딱뜨린 상황 환경에서

구원이란 영역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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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6-큐티-로마서 11:1~24

제목: 가자... (바울의 고백)

깨달음

(롬11:1-36)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11:33-36, 쉬운성경)

33 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은 참으로 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34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그분의 의논 상대자가 되었습니까?"

35 "누가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하나님의 답례를 받는단 말입니까?"

36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보존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토록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세계 작품 이야기

인생의 의미 ‘신비’라는 표현이 묵상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신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풍성하시다.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그분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누가 하나님의 의논 상대자가 될 수 있을까

누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 답례를 받을 수 있을까

모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보살핌으로 보존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토록 영원토록 있기를 원한다.

바울도 인생에 많은 혼란스러움 가운데

하나님의 작품 이야기의 진실 핵심을 알았고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중..

오늘의 고백을 하게 되지 않았는가 묵상이 된다.

하나님의 작품 이야기 신비가

나의 현재 현실과 맞닿아있는 상황과

어떻게 긴밀히 깊이 연결이 될 수 있을까..

깊이 연결이 된다면..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것인가..

결국 오늘은 시작됐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살라고 하신다.

굳이 또 표현하자면..

힘들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의미다 담겨 있음을 묵상하게 된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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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7-큐티-로마서 11:25~36

제목: 하나님에게는 후회하심이 없으시다. (자신감 주신감)

깨달음

(롬11:25-36)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작업실이다.

통찰력은 뭔가 새롭게 깨달은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통찰력은 본질을 볼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은사의 본질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길 원하신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됐고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것이다.

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 세상의 진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이야기이며 작업실이란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하신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고 보내신게 맞다.

성경의 이야기의 내용을 요근래 나름 조금 깊이있게?

들어가다 보니..

점점 할말과 생각이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랄까..

그러니까.. 원래도 부족해서 알 수 없지만

사람으로서는 이 인생에 대해 알수가 없겠구나라는 마음과

하나님께서 만드셨음을 인정해가게 되니..

하나님께서 완전한 이야기를 만드셨음을

오늘 말씀처럼 후회하심이 없으신 일들을 하고 계심을

조금 더 알게 된것이라 표현하면 될까..

그냥.. 그런 기분이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깨달으려 하는것일까..

하나님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 이야기 인생을 선물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닌가 묵상이 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런 인생의 경로를 주신 것일까..

일이라는 영역은 나의 인생에 너무 어려운 영역인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받아들여야만 하는것일까..

내게 주신 은사가 분명히 있다.

자신의 은사에 대해 너무 겸손한 모습은 교만일 수 있다는

설교 내용이 쓰여진다..

지금 내가 이런 일을 하는데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일하심과 인도하심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으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인생과 경로는

후회하심이 없으시다.

그러니까..

우울해 하지말고 깊이 분석하려하며 방황하지말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는게 하나님의 뜻인것이다.

오늘을 우선 살아가보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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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8-큐티-로마서 12:1~21

제목: 사랑과 선 (궁극적 가치 미션)

깨달음

(롬12:1-21)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많은 사람들은 같은 기능을 가지지 않았다.

각 사람은 은혜로 받은 은사가 있다.

살아가는데 실력이 있어야 함을 묵상하게 된다.

최근 말씀을 묵상하고 인생에 대해 묵상하며

깊은 고찰과 통찰을 얻으며

말씀으로 겨우겨우 하루하루 버텨내었지만..

눈으로 볼 때 암울하고 소망없어 보이는 현실 가운데서

결국 그리스도인으로 마주한 나의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말씀과 현실의 그 간극을 어떻게 매꾸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의 나이 39살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10년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하루 하루 버텨내며 드는 생각은

이제 여섯시 이후에 버틸 체력은 없어진 것 같고

야근은 원래도 잘 못했지만 이제 정말 더는 할 힘이 없구나

느껴졌고..

사무환경 가운데 내가 이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한계를 직면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정말 이대로 이렇게 살아지면 되는걸까

조금 더 나은 모습은 없을까 고민이 되던 중..

2026년 41살부터 2035년 50살

2024년 현시점부터..

2025년 40살은 앞으로의 10년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이 되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이 시대에 맞게 나에게 맞게 현실적 구체적 제안으로는

묵상이 되지 않고..

그런데 뭔가 구체적 제안의 큰틀이 되어야 할

명제를 주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게 무엇일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일까

......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지혜롭게 생각하라..

혹시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까지 생각이 닿고 싶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은혜로 주신 은사가 있다.

내가 지금 떠오르고 생각이 닿는 부분까지가

어쩌면 은혜로 주신 은사의 영역이지 않을까..

카페같은 어떤 공간에서 우리의 속도로 살아보겠다는 생각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디자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

영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

어릴 때 무엇을 좋아하고 자주했는가..

운동 미술 비트박스..

지금 나의 지혜로 생각이 닿는 지점들..

분명히 하는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하기전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먼저 정립되어야

다음 스텝이 있음을 묵상하게 된다.

생존이 목적이고 살아야 한다는것 알겠다 너무 중요하다.

그런데 그냥 생존이 목적이라고

생각이 닿는 저 지점들을 결정하는 것은 옳은가..

이것 또한 아닌 것 같다.

오늘 말씀에서 생각이 닿는 지점을 결정하기 이전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설정하는 것이 선행 되어어 함을

묵상하게 된다.

생각이 닿는 지점의 미션 비전 궁극적 이유

가치 뿌리를 만들고 주춧돌을 놓는

말그대로 목적 이유를 정립하는 과정이 선행 되어야함을

알게 된다.

그 가치는 오늘 9절~21절의

‘사랑’, ‘선’ 에 대한 부분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마주한 현실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는..

사랑과 선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간극을 매꾸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사랑과 선이 없고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립하는 과정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거룩한 산제물의 영적예배를 드릴 수 있었겠는가..

사랑과 선이라는 큰 명제가

눈에 보이는 구체적 명제로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사랑과 선에 대해 인지되고 내제되어야만

글로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글로 시각적으로 표현이 되려면

그 이전에 사랑과 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는가..

사랑과 선이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

사랑과 선의 가치가 진짜다.

사랑과 선에 대해 정립없이도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다.

난 왜 진짜가 되고싶어하는 걸까..

나의 원래에 모습으로 살고싶은 마음이기도 한 것 같다.

원래 창조하신 모습대로 자연스러운 모습..

그런데..

나에게 은혜로 주신 은사에 대해

나 스스로 얼마나 진지한가..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는

주신 은사의 형태를 뚜렷이 나타내어여만 할 것이다.

형태를 뚜렷이 나타내려면..

많은 시간 몰입하고 몰두해야만 그 형태가 드러나게 되어있고

어떤 경지에 다다른 상태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스스로 진짜가 되고 싶은 생각이

그냥 노력도 없이 편하게 살고싶다는 욕망이 전제로 깔려있지 않나 돌아봐야하겠다.

은혜로 주신 은사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은혜로 주신 은사에 진지해야 한다.

진지해야 한다.

난 나의 은사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가....

(고전13:1-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Co 13:1-13, NIV)

1 If I speak in the tongues of men or of angels, but do not have love, I am only a resounding gong or a clanging cymbal.

2 If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can fathom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if I have a faith that can move mountains, but do not have love, I am nothing.

3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give over my body to hardship that I may boast, but do not have love, I gain nothing.

4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5 It does not dishonor others,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6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7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8 Love never fails. But where there are prophecies, they will cease; where there are tongues, they will be stilled; where there is knowledge, it will pass away.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0 but when completeness comes, what is in part disappears.

11 When I was a child, I talked like a child, I thought like a child, I reasoned like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the ways of childhood behind me.

12 For now we see only a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13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Ro 12:9, NIV) Love must be sincere. Hate what is evil; cling to what is good.

사랑 (agapē 아가페)

I. 사랑.

1. 인간의 사랑.

a. 사랑의 대상이 없는 경우.

㉠ [주어로 사용] 고전8:1; 13:4,8 빌1:9.

㉡ [술어로 사용] 딤전1:5 요일4:16.

㉢ [목적어로 사용] ἀγάπην ἔχε- ιν: 사랑을 가지다, 고전13:1-3 빌2:2.

㉣ [속격으로 사용] 고후8:8 빌2:1 살전1:3 히10:24 벧전5:14.

㉤ [전치사구로 사용] 전치사 ἐν과 함께 쓰이는 경우, 고전16:14 갈5:13 골2:2 살전5:13 딤전1:14 몬1:9 계2:19.

b. 특별한 용례.

㉠ [비인격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살후2:10.

㉡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요13:35 엡1:15 골1:4 살전3:12 살후1:3.

㉢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눅11:42 요5:42 살후3:5.

2.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

a. 인간을 향한.

㉠ [하나님의 사랑] 롬5:8 엡1:4 요일4:9,16.

㉡ [예수의 사랑] 요15:9,10,13 롬8:35 고후5:14.

b.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의 사랑, 요15:10; 17:26.

II. 사랑의 잔치: 초대교회가 형제적인 사랑을 가지고 장려하고, 그것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교회예배에 이어 가진 공동식사, 유1:12.

선 (agathŏs 아가도스)

I. [기본형] 선한, 착한, 좋은.

1. [외적인 의미에서] 적합한, 유능한, 유용한, 마25:21,23 눅19:17; 23:50 행11:24 엡4:29 딛2:5 벧전3:10.

2. [내적 가치, 특히 도덕적 가치로서] 완전한, 마19:17 막10:18. 선한, 친절한, 마20:15 벧전2:18.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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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9-큐티-로마서 13:1~14

제목: 사랑

깨달음

(롬13:1-14)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4, 우리말성경)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애쓰지 마십시오.

(롬13:14, 쉬운성경)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자는 율법을 다 이룬것이다.

여러 계명이 있지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애쓰지 말라

오늘 말씀도 나의 현실에 맞게 구체적 제안점으로는

깊이 와닿아 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이란 영역을..

나의 현재 상황가운데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게 무엇일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는게 무엇일까..

나의 현재 상황가운데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에 애쓰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사랑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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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큐티-로마서 14:1~23

제목: 무엇이 되려는 것인지 알고 있는가

깨달음

(롬14:1-23)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인생이란 작품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인생이란..

하나님의 사업 하나님의 일에 대한 것이

중심되는 주제임을 묵상하게 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다.

우리는 깊이 잘은 모르지만..

우리를 만드신분 하나님을 인지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시려고 하시는가..

선한 것 하나님의나라 성령 의와 평강과 희락

화평의일 덕을 세우는 일

우리는 갑자기 어느날 태어나 인생을 살아간다.

살아가며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지 인생이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인생은 결국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타내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신다.

한사람 한사람을 통해서 일하고 계실 것이다.

존재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담으시려고 하시는 것일까..

내가 하나님의 어떤 것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어제 안목이라는 책 처음 내용과 이어지는 것 같다.

분명히 하나님의 그 무엇은 있다.

그래서..주의 뜻을 아는 것이 필요함을 묵상하게 된다.

근데 알기 쉽지 않으니..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나의 지금 상황 정황 배경은

하나님께서..

‘무엇’ 담으시려고 하시는 것인가..

나 장아람은..

하나님의 꿈 비전 일하심 속에서

‘무엇’ 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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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큐티-로마서 15:1~13

제목: 하나님을 붙들자 (인내 위로 소망)

깨달음

(롬15:1-13)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선을 이르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

어제 대표님 면담 이후로

생각이 많아서인지 잠도 잘 못자고

여전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말씀을 봐도 깊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열방들 이방인들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여야 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에 누가 되지는 말자..

내가 저들에게 얼마나 선과 덕을 세울 수 있겠냐만은

너무 심각하기만해서 분위기를 헤치지말고

차분하고 부드럽게 나의 의사를 분명히 말하고

잘 마무리하도록 해야함을 묵상하게 된다.

사실 잘 분별이 되지는 않는다.

인내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붙들자..

어제부터 소망이 없으니..

감히 또 살면 뭐하나 쓸모 없는 인생이라 하며

어떻게 죽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죽을 용기도 없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간구드리자

하나님을 붙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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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2-큐티-로마서 15:14~33

제목: 하나님의 일 (미션 비전)

깨달음

(롬15:14-33)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24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일

그리스도 복음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

바울은 이방인이 순종하게 되기 위해

하나님의 일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셨다고 말한다.

말과 행위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충만하게 전하였고

땅 끝이라고 불렀던 스페인까지 이르려 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

하나님의 뜻..

평강의 하나님..

하나님의 일..

지금 존재하는 것들 우주 지구 세상의 모든 것 이야기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일 핵심은 구원이다.

결국 마가복음과 로마서를 지나며..

내가 성장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인데

진짜 이게 다뭐냐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진실은 성경이다.

진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일하심 가운데

나의 인생이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내가 마음으로 믿어 의의 이르고

내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이 만드신 장아람이라는

인생가운데 시간가운데 현실가운데

삶으로 예배드려야 하는데..

내 현재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전혀 도움도 안되는 것 같고..

3개월까지만 하고 그만두게 되는 이 상황에서

이 지지부진한 인생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션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실현하는 것이다.

미션은 변하지 않지만

비전은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 스스로 위안 해보려는 말이기도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내야하기에..

비전의 모양새는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거운 마음과 생각을 조금 풀고 싶은 마음이다..

미션..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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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3-큐티-로마서 16:1~27

제목: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시다.

깨달음

(롬16:1-27)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8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11 내 친척 헤로디온에게 문안하라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에게 문안하라

1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백지의 노트가 주어지게 될텐데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지만

모든 상황에서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가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이미 우리 발 아래 상하게 하셨다.

죽음과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다.

우리는 지금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워가는 중이다.

살아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 생각이 많다.

그냥..왜이렇게 두려울까..

오늘 하루도 시작이 되었다.

기쁨이 있진 않지만..

일을 정리하게 된다고 하니..

부담이 없어져서인지 잔잔한 마음이 있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할까..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너무 실패가 쌓여서 그런지..

그냥 막막함과 멍함이 공존하는 기분이다.

나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시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선하시다

나를 죽는날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오늘도 인도하신다.

나의 실패를 보지말고..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담으시려고 하시는지

집중해보자..

어떻게든 살아질거야 아람아...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도 보인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묵상이 된다.

그냥..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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